우리 지구생태계의 생산자인 식물은 빛에너지를 이용하여 이산화탄소와 물을 당으로 전환시키는 광합성을 수행한다. 광합성을 통해 스스로 탄소유기화합물을 합성하는 식물은 에너지원을 얻기 위해 애써 움직일 필요가 없다. 따라서 식물은 진화과정에서 운동성을 상실하고 정착생활을 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식물의 생장ㆍ발달상의 특징은 기본적으로 식물의 비운동성에서 비롯된다.



식물이 움직이지 못하는 것은 생명체의 기본단위인 세포수준에서 설명된다. 식물세포는 매우 단단한 섬유소로 구성된 세포벽 감방속에 갇혀 있기 때문에 운동성이 없다(그림참조). 멍석말이를 당한 사람이 꼼짝도 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운동성이 없는 세포들이 모여 구성된 개체가 움직이지 못하는 것은 자명하다. 식물은 세포벽이라는 단단한 보호막으로 자신의 세포를 보호하기 위해 기회비용(trade-off)으로서 운동성을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모든 생명체는 외부자극에 대해 반응성을 보인다. 동물은 운동성이 있어 생존을 위협하는 자극에 대해서 적극적 회피반응을 보이지만 식물은 생장을 통해 반응하게 된다. 음지에 놓여진 식물이 빛을 향해 자라는 굴광성은 전형적인 식물의 생장반응이다(그림참조). 식물이 서식하는 자연환경은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생장반응은 식물의 생존에 있어서 절대적인 요소이기도 하다. 동일한 유전정보를 가진 식물체를 키워보면 단 한그루의 식물도 같은 모습으로 자라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 동물에서 쌍둥이가 똑같은 모습으로 성장하는 것과는 대조가 된다. 이는 식물의 생장반응의 유연성(plasticity)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로서 각 개체가 처한 미세환경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지구상의 모든 동물은 일정한 수명을 가지고 있으나 식물은 정해진 수명이란 것이 없다. 고향마을 어귀에 자라는 수백년된 고목은 식물의 영속적 삶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하겠다(그림참조). 수명에서 나타나는 동식물의 차이는 배발생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동물은 배발생 초기에 모든 조직과 기관이 완전히 형성되나 식물의 경우 배발생이 완료되어도 모든 기관이 다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콩나물에서 꽃기관을 찾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식물은 자극에 대해 생장반응을 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새로운 기관을 생성하게 되는데 이것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정단분열조직의 영속적 배발생이다. 줄기나 뿌리의 정점에 정단분열조직이 존재하며, 이곳에는 동물의 수정란과 같이 미분화된 상태의 세포군들(줄기세포)이 영속적으로 유지되면서 새로운 기관, 줄기, 뿌리, 잎, 꽃 등이 생산된다. 이를 식물의 영속적 배발생이라 한다.



식물은 줄기-잎이라는 모듈이 반복되는 매우 단순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세포형(cell type)에 따라 구분을 해보면 식물에는 기껏해야 10여종의 세포형밖에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나 식물에는 일견 필요 이상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로서 200여종 이상의 서로 다른 세포형을 가진 복잡한 구조의 초파리는 게놈내에 13,600여개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반면 게놈구조가 가장 단순한 식물로 알려진 애기장대의 경우 약 26,000여개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식물이 이와같이 풍부한 유전자를 게놈내에 확보하고 있는 이유는 다양한 환경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유전적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구호를 식물이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