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기원; 화학적 진화 혹은 진화소설

생물학적 진화는 다윈 이후 많은 진화학자들에 의해서, 특히 리차드 도킨스의 그 기발한 아이디어와 치밀한 논증을 통해서 잘 이해되고 있다. 자연계에 어느 순간 복제되어 증식되는 어떤 물질이 형성되었고, 이후 이 물질들 간의 경쟁과 자연의 선택에 의해 보다 잘 증식되는 복제체가 앞다투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복제기계는 어느 순간 서로 협업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함을 알게 되었고, 따라서 보다 세련되고 정교한 협업 생명체가 출현하게 되었다. 이후 약 20억년의 진화과정을 거쳐 현재와 같은 다양한 동·식물이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자연선택 이론에 따른 ‘유전적 변이’와 ‘환경에 의한 선택’이 오늘날 생명의 다양한 모습들을 조각해 내었을 것이다.

어떻게 이토록 다양한 생명이 진화적으로 나타나게 되었는지는 놀라울 정도로 단순한 이론-자연선택 이론-에 의해 잘 설명된다. 그렇다면 진화의 첫 시작은 어떻게 일어났을까? 즉 자연선택 이론이 적용될 수 있는 최초의 생명이 어떻게 출현하게 되었을까? 이를 생명의 진화에 앞선 ‘화학적 진화’라 부른다. 화학적 진화를 통해서 최초의 원시세포가 출현하였을 것이며, 이후 생물학적 진화를 통해서 보다 세련된 생명체들이 나타나게 되었을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처음 고민한 사람은 다윈 자신이었다. 그는 ‘따뜻한 작은 연못’ 속에서 최초의 생명이 출현하였을 것이라 상상하였다. 다윈의 ‘종의 기원’에서 이 대목에 주목한 사람은 당시에는 거의 없었다. 당장 사람들은 인간의 조상이 원숭이란 말이냐 라는 이슈에 핏대를 올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생명의 분자 DNA가 밝혀지고, 물리학·지질학의 발달로 지구의 나이가 무려 45억년이나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최초의 생명체가 어떻게 출현하였을까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비로소 생명의 기원, 즉 화학적 진화가 학문의 대상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선구자는 역시 소련의 생화학자였던 오파린이었다. 그는 1936년 ‘생명의 기원’이라는 책을 통해서 지구상에 존재하던 무기물이 유기물로 변환되었고, 이들이 결합하면서 최초의 원시생물체가 출현하였을 것이라 제안하였다. 이를 ‘오파린 가설’ 혹은 자연발생설이라 한다. 영국의 생물학자 할데인이 이에 가세하여 자연발생설의 시나리오를 체계적으로 구축하게 되었다. 이 시나리오에 따르면, 지구의 초기 원시대기는 현재와 달리 메탄, 수소, 수증기, 암모니아 등으로 이루어진 환원성 대기였을 것이며, 자외선, 열 등이 도처에 널려있는 반응성이 높은 상태에서 아미노산, 당, 핵산 염기 등 생명의 구성원소들이 생성되었을 것이고, 이들이 바다로 떠밀려가 어떤 해변가 공간 속에서 농축되어 생체고분자 물질들이 만들어진 뒤, 간단한 물질대사를 수행할 수 있는 원시세포로 조립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가설에 따라 이를 실험적으로 직접 입증한 사람이 시카고 대학의 밀러이다. 그는 1953년 인공방전기를 제작하여 오파린-할데인 가설에서 제안되었던 대기조건을 제공한 뒤 방전 실험을 수행하였다. 그 결과 놀랍게도 아미노산과 간단한 핵산 염기 등이 생성되는 것을 보았다. 이 놀라운 실험은 당시 많은 과학자들을 각성시켰으며, 이후 화학적 진화를 진지한 연구 주제로 삼는 과학자들이 꾸준히 나타났다. 대표적인 과학자 중의 한 사람이 미국 샌디에고에 있는 스크립스 연구소의 제랄드 조이스 박사이다.

이제 지금까지 논의되고 있는 화학적 진화라는 가상소설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보자. 일단 화학적 진화에서 가장 커다란 변화 중의 하나가 최초의 분자가 DNA냐 단백질이냐 라는 논쟁은 RNA에 효소 기능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리가 된 것 같다. 즉 최초의 분자는 정보저장의 기능과 물질대사 기능을 동시에 가진 RNA였을 것이라는 설이 가장 설득력있는 가설이 되었다. 이러한 개념의 전환에 결정적 역할을 한 분은 당연히 미국 콜로라도 대학의 토마스 체크(Thomas Cech)이다. 그는 RNA 분자가 스스로 자신의 사슬을 절단하는 효소 기능을 가지고 있음을 밝힘으로써 효소=단백질이라는 오랜 패러다임을 깬 과학자이다. 이후 RNA가 효소 기능을 하는 다양한 연구 결과들이 발표되면서 화학적 기원의 최초 분자가 RNA라는 사실에 많은 과학자들이 동의하면서 RNA 월드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대표적 효소 기능 중 하나로 밝혀진 것이 리보조옴의 단백질 합성이 RNA의 촉매 작용이라는 것이다. 최근에는 생물체의 게놈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단백질 생성 명령어가 아닌 수많은 전사체 RNA의 존재가 밝혀졌고, 이들로 인해 새로운 생명현상의 발견에 대한 기대가 한껏 부풀려졌다. 이들의 기능을 밝히는 것이 새로운 생물학적 원리의 발견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오파린-할데인의 가설에 의해서 다윈의 ‘따뜻한 작은 연못’은 해변가 바윗덩어리 속의 움푹 패인 물웅덩이로 진출하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생명의 재료물질에서 거대분자가 형성되는 데는 쉽지 않은 화학적 난관을 극복해야 한다. 즉 아미노산, 뉴클레오티드 등의 단량체가 단백질, DNA 등의 중합체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열역학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등장하기 시작한 아이디어가 바닷속 용암 분출구, 해저 열수공이다. 해저 열수공 주변은 항상 따뜻한 온도가 유지되어 화학적 반응에너지가 높은 상태이며 또한 고압이 유지되는 상태이므로 자연적인 상태에서는 불가능한 화학적 결합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이 아이디어는 생명이 바닷물 속에서 기원했을 것이라는 일반적인 추론과도 잘 부합한다. 이후 열수공 주변의 환경을 모사한 다양한 실험이 이어졌다. 특히 내가 읽은 생명의 기원 서적 “(제5의 기적) 생명의 기원-폴 데이비스”에 따르면 단단한 화강암 암벽 속에 스며든 생명의 재료물질이 층층으로 포개진 미세구조 속에서 화학결합 하였을 것으로 추론하고 있다. 즉 단량체의 축중합 반응이 매우 잘 짜여진 환경 속에서 쉽게 일어났을 것이란 추론이다.

최근 들어 생명의 화학적 기원에 대한 상상이 우주 공간으로 확장되기 시작했다. 지구의 ‘따뜻한 작은 연못’ 혹은 따뜻한 해변가 물웅덩이에서 만들어졌을 거라 상상해오던 생명의 재료 물질들이 우주에서 날라 온 운석 덩어리에서 발견되기 시작한 것이다. 즉 유기물이 우주의 어느 천체 공간에서 만들어져 지구로 날라왔다는 새로운 이론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후 천문학적 연구들을 통해서 우주의 천체 공간에서 아미노산, 핵산 염기 등이 검출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우주생물학’이라는 만화인지 과학인지 아리송한 신흥 학문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쯤되면 이중나선 구조의 발견자 크릭 박사가 등장한다. 크릭 박사는 생명체가 지구에서 자연발생 되기에는 확률이 너무 낮다는 창조론자들의 주장을 수용하여, 그 확률을 획기적으로 증가시키기 위해 지구 생명의 외계기원설(우주기원설)을 주장하였다. 생명체가 출현한 장소를 지구라는 한정된 공간, 45억년이라는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에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우주 공간과 시간으로 확장해 버린 것이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우주의 어느 공간에서 고도의 문명을 가지고 생존하던 생명체가 갑자기 파국을 맞으면서 위기대응 매뉴얼로 미생물을 잔뜩 태운 우주선을 천지사방으로 날려보냈다는 것이다. 그 중 하나가 지구에 도착하여 생명의 진화를 이어갔다는 이론인데, 이 이론은 여전히 화학적 진화를 설명하지 못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문제를 외계 우주 공간에 집어던진 것에 지나지 않는다.

생명의 화학적 기원은 여전히 아직 소설 수준의 얘기이고 실험적으로 입증한다는 것이 무모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의 기원’이라는 주제는 ‘우주의 기원’이라는 주제와 쌍벽을 이루는 최고의 과학적 의문임에는 분명하다. 이러한 문제에 도전하고 있는 노벨상 수상자 잭 스조스탁(Jack Szostak) 교수의 연구는 대단히 흥미롭다. 잭 스조스탁 교수는 Telomere 연구로 이미 2009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과학자이다. 이런 분이 진화소설처럼 여겨지는 화학적 진화를 연구하고 있다니 당연히 관심이 갈 수 밖에 없다. 그는 생명이 출현하기 위한 다양한 조건들을 다섯 단계로 나누고 각 단계별 프로세스를 실험실에서 구현하고 있다. 그는 세포분열이 일어나는 원시세포의 조건을 찾아내었으며, 최근 발표한 Science 논문에서는 효소가 없는 상태에서 일어나는 RNA 합성 조건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1). 자못 흥미진진한 연구가 노벨상 수상자라는 명성을 가진 과학계의 대가에 의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2). 화이팅!

2014. 1. 21

Reference

Adamala and Szostak Science, Vol. 342, p1098-1100.

The life force, Science, Vol. 342, p1032-1034.